요즘엔 아침엔 인턴쉽, 저녁때는 연구활동으로 아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턴쉽이 다행히도 remote 근무라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다. 인턴으로써 하는 일도 당연하겠지만 그리 어렵지 않기때문에 무리하지 않으면서 수행하고 있다. 내가 맡은 업무는 principal investigator (이하 PI)를 도와서 research를 위한 여러 통계적 분석을 수행하는 것이다. 내 연구분야와 살짝 방향이 달라서 생소한 방법들이었지만, 대학원생답게 열심히 논문을 읽어 공부해서 적용해보고 있다. 회사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chill 하다 해야하나? 페이스가 느린 편이라 서둘러 할 필요는 없다. 회사가 밴쿠버보다 세시간 빠른 Ottawa에 위치하고 있어서 내 근무시간은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이다. 원래 일찍 출근해서 빨리 끝나는걸 좋아하기 때문에 나한텐 정말 개이득이 아닐 수 없다.
인턴쉽 일이 끝나면 내 연구를 한다. 첫번째 논문 제출한 것이 review를 받아 돌아와서 그것도 처리해야하고, 두번째 논문도 drafting을 마저 해야한다. 세번째 논문 방향도 얼른 정해야 하고. 할것들 투성이다. 요번 7월초에 한국의 건국대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때문에 그 전에 최대한 많이 해두고싶다. 아, 그 컨퍼런스에 쓸 포스터도 만들어야 하는구나. 하지만 요즘 다시 전자기타에 빠져들어서 기타연습도 해야한다. 예전엔 펑크락이 좋았는데 지금은 블루스가 너무나 좋다. 대학원생 라이프는 이렇게나 바쁘다.
하지만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즐길 수 있는건 최대한 즐기고 있다. 몇주전에는 캐나다 전역에서 오로라가 보였다. 어느날 아침 랩미팅에서 교수님이 '오늘밤에 오로라가 보일 확률이 엄청 높다더라'라고 말해주셨다. 그날 해질녘쯤인 오후 9시쯤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가보니 이미 많이들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나도 풀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기다렸다. 밤 10시쯤 어둠이 깔리고 나서도 오로라는 보일 기미가 안보였다. 10시반쯤 됐을때 '아 그냥 집에 갈까' 라고 생각하던 순간, 멀리서 희끄무레한 빛이 내려왔다. 뭔가 달빛이 내리쬐는 모습같기도 하고, 도시의 불빛이 퍼진것같기도 한 모습에 살짝 헷갈렸지만, 이내 그 빛은 더 선명해지면서 일렁거렸다. 곧 초록빛과 보랏빛이 돌면서 얇은 커튼이 바람에 춤추듯 흔들렸다. 오로라였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리고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다 (대체 왜...). 생전 처음 보는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현상에 나도 완전 흠뻑 빠져들어서 구경했다. 산 너머로 갈수록 초록빛이 더 선명하고 예뻣다. 내 아이폰 XS도 그 광경을 담아보려고 노구를 이끌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을 100%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밴쿠버의 도시 위로 내리쬐는 초록빛과 분홍빛의 향연은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니... 정말 이곳에 오길 잘했다. 오로라 쇼는 한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7월에는 컨퍼런스 말고도 다른 이벤트도 있다. 나와 결혼을 약속한 사람의 동생이 7월에 결혼을 한다. 그것도 그리스에서! 그리스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신부될 사람이 그곳에서 하는것이 로망이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와 여자친구도 한국으로 갔다가 나는 컨퍼런스, 여친은 우리 결혼준비를 좀 한 다음 그리스로 바로 가기로 했다. 가는길에 아부다비에서 이틀정도 스탑오버를 하면서 아부다비와 두바이 여행도 할 계획이다. 컨퍼런스 한 일주일전쯤 한국으로 가니 거의 한 3주는 여행을 하게 되는것이다. 이정도면 미리 신혼여행으로 봐도 무관할듯하다.
요 몇달동안의 일들은 처음 이민을 결심한 때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약 6년전의 나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들이다. 그땐 막연히 대학원 졸업후 취업해서 커리어를 쌓는 것 정도만 생각했었다. 결혼같은건 아예 논외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다이나믹하고 행복하게 살고있다. 비록 세상을 바꾸는 논문같은건 쓰지 못했지만, 인턴쉽부터 커리어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다. 퇴근 후 여유가 많은 오후에는 운동도 하고, 연구활동을 하고 나면 책을 보거나 기타연습도 한다. 가끔 컨퍼런스(를 빙자한 여행)도 다니면서 인류 최고의 지성들과 교류를 한다. 화사하고 햇빛이 유난히 따뜻했던 날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캐나다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며 추억과 사랑을 쌓다가 결혼을 약속했다. 6년전의 내가 만약 안정적인 월급이라는 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에서 그쳤으면, 지금쯤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마 지금 내가 살고있는 현실을 꿈이나 상상속으로만 그려봤을 것이다.
이정도면 이민 성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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