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한가득 피어서 이제야 봄이 왔나 싶더라도 다시 춥고 비오는 날이 며칠 이어지는걸 보면 올해의 봄은 유독 수줍음이 많은 것 같다.
박사생활도 이제 2년이 꽉 차간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면 있었고, 그렇지 않다면 또 그렇지 않다.
정말 오랜만에 약간 여유가 생긴 김에 생각 정리도 해볼 겸 근황 업데이트를 적어본다.
일단 공부와 관련해서는, 업데이트 할 내용이 많지 않다.
일단 작년에 하던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이게 너무 진도가 느려서 지쳐가고 있다. 울교수님+나+타과 교수님+그 교수님의 학생 요렇게 네명이서 조인트로 하는 프로젝트인데, 프로젝트 내용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유전자와 피속의 대사물질(metabolites), 그리고 인간의 건강한 노화 간의 관계를 찾는게 주된 내용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유전자와 대사물질 데이터를 접해봤는데... 데이터가 너무 더럽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데이터 전처리에 대해서 얘기가 계속 나오고있다. 6월에 컨퍼런스 출품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울교수님과 나는 일단 우리가 갖고있는 결과들로 얼른 페이퍼를 (초안이라도) 작성하자 라는 입장이지만 타과 교수님+그의 학생은 계속 데이터 전처리 step을 추가하고 싶어한다. 어차피 그쪽 랩이 주도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라 들어주긴 했지만, 그 전처리를 하더라도 결과엔 큰 영향이 없고 (어차피 여러 scaling+transformation이 잔뜩 적용된 데이터라 결과상 숫자 자체에는 큰 의미는 없다), 데이터가 바뀜으로써 이후 분석을 모두 새로 돌려야하기 때문에 너무 영양가없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해야지 뭐...
이런 지루한 프로젝트만 계속 붙잡고 있다간 내 박사생활이 무한정 늘어날 것 같기에 다른곳에도 눈을 돌렸다. 원래 목적은 메인 프로젝트에서 파생하여 나+울교수님 주도로 뭔가를 해보려 시작했지만, 하다보니 그냥 standalone 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이건 시작한지 거의 4~5달쯤 되어가는데 벌써 실험이랑 논문에 넣을 figure들을 다 만들었고, 초안을 작성중이다. 이 속도라면 아마 메인 프로젝트보다 먼저 초안이 완성될 듯 하다.
이런 박사과정에 관련된 것들 말고도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몇개 해보고있다.
일단 미국 어느 대학교에서 개최한 cherry blossom peak prediction 대회에 참여했다. Vancouver, Kyoto, Liestal, Washington D.C. 이렇게 네개의 도시들에서 언제 벚꽃이 최대로 만개할 것인가를 예측해보는 대회다. 내 리서치 주제와는 거리가 멀지만, 오랜만에 gradient boosting 같은 머신러닝 툴도 써보고, extreme class imbalance 문제도 고민해보고, 어떻게 하면 코드를 좀 더 읽기 쉽게 작성할까 하는 고민도 해보는 등, 모처럼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해보는 경험을 쌓았다. competition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이겼으면 좋겠다).
요즘엔 이번달 말에 있을 Statistical Society of Canada 학회에서 주최한 case study competition 프로젝트를 열심히 해보고있다. 기후변화가 캐나다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게 과제인데,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causal inference 방법을 이용해서 풀어보고있다. 작년에 동일한 학회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우승했던 즐거운 경험이 있기때문에 이번에도 기대가 높다. Causal inference는 나중에 적극적으로 연구해보고싶은 분야이기 때문에 이번 competition이 좋은 연습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많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일들이 있었다.
일단, 드디어 영주권이 나왔다! 2021년 12월쯤 처음 신청을 했는데 거의 1년 5개월정도 걸려서야 나온 것이다. 이젠 캐나다 내에서 자유롭게 취업도 할 수 있고, 캐나다에 머물기 위해 굳이 학업을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박사과정 중에 한 1년정도 휴학을 하면서 full-time 일을 해보려고 생각중이다. 영주권 카드를 받고나니 이제야 이민에 성공했다는 안도와 함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녔다. 비록 거의 BC주 내에서였긴 하지만, 캐나다에 거의 4년가까이 살면서 가보지 못한 곳들을 많이 가봤다. 그 유명한 Whistler 스키장이라던지, apple cider가 유명한 Bowen Island라던지 등등. 최근에는 BC주의 주도인 빅토리아에 짧게 다녀왔다. 운이 정말 좋게도 날씨가 그때만 확 개었다. 덕분에 빅토리아 시내도 잘 구경하고, 근방에 소도시들도 구경하고, 여러가지 꽃이 만개한 Butchart Garden도 다녀왔다.
앞으로도 여기저기 갈 기회가 많을 것 같다. 이번달 말에는 처음으로 BC를 벗어나 SSC 학회가 열리는 Ottawa에도 다녀올 계획이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메일을 주셨다. 그 중에는 성공적으로 캐나다 대학원에 합격하셨다는 반가운 메일들도 있었다. 처음엔 그냥 캐나다 대학원에 지원하면서 들었던 생각들과 경험들을 가볍게 공유해보고자 쓴 글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에서 도움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얻어가셨다니 너무나 뿌듯하면서도,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두를 위해 꾸준히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책임감도 든다.
행복을 위한 방황이라는 축복을 가진 이들을 격하게 응원하며 이번 업데이트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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