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선가 읽은 것 같다. '학부생은 자기가 다 아는 것 같고, 석사생은 이제는 좀 알 것 같다고 느끼며, 박사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정말 너무너무 공감된다. 새롭게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기존엔 그냥 주어진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의 근원을 파고들다보니 그동안 내 지적 기반이 너무나도 부족했음이 팍팍 느껴지는 요 몇달이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온통 새로운 것(이자 해야할 것) 투성이이다보니 망망대해를 튜브 하나에 의지해 헤엄치는 기분이지만, 틈틈이 물장구도 치고 파도도 타보면서 공부의 즐거움과 피로함을 한껏 느끼고 있다.
공부도 공부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나 건강이다. 출시하자마자 구매에 성공한 애플워치 덕분에 거의 몇달동안 꾸준히 운동도 하고있다. 홈트+달리기로 한 5개월정도 했나? 확실히 군살이 많이 빠지고 체력이 좋아지면서 공부할때 집중도 잘 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 한겨울같은 날씨때문에 몸이 축축 처진다. BC주는 겨울에 비가 많이오는데, 3월의 막바지가 보이는 요즘에도 한겨울만큼 비가 자주 오고있다.
이곳에서 한 2년반 정도 살아보니 전반적인 만족도는 서울서 살때보다 확실히 높다. 하지만 아쉬운걸 꼽아보자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를 쌓는것이 쉽지 않다. 서울에서는 오픈채팅방부터 해서 무슨무슨 동호회 등등 낯선사람들끼리 큰 부담없이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하지만 여기는 (내가 못찾는것인지) 그런게 거의 없어서 새친구 사귀기가 쉽지가 않다. 그나마 제일 정석적인 루트가 교회정도? 아니면 알음알음 열리는 논문 reading group이나 취미 기반 social gathering 같은 곳을 찾아서 비집고 들어가야한다. 즉, 새로운 사람을 사귀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북미에서는 네트워킹도 하나의 능력으로 치는게 그런 이유인 것 같다.
이때문에 이제는 해외에서 사는걸 무턱대고 추천하길 주저한다. 난 이런게 익숙해서 그런지 크게 외롭다고 느끼지 않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한텐 맑은 공기고 뭐고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나 겨울이나 요즘처럼 밤낮으로 비만 주구장창 내리는걸 몇주동안 보고있자면 우울증이 더이상 남얘기만은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은근 상당히 강한 멘탈을 요구하는 BC주에서의 생활이다.
박사생활도 이제 반년정도가 지났지만, 아직 개인연구를 시작하진 않았다. 주변엔 이미 본인 프로젝트를 하고있는애들도 있어서, 최근들어 사실 살짝 불안+초조했다. 내 박사생활도 기대했던 따스한 봄이 아닌, 요즘날씨처럼 축축 쳐지는 먹구름낀 겨울을 맞이하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이럴때마다 어떻게 아시는지 울 교수님은 날 격려하신다. '걱정마라, 쟤들이 빠른거지 너는 정상적인거다. 석사때도 잘 해냈으니 이번에도 잘 할것이라 확신한다'며, 일단은 5월초에 있을 comp exam에 priority를 두자고도 하셨다. 그러면서 생전 처음보는 분야인 analysis of metabolites 관련 논문을 두어개 던져주며 읽어오라고 하셨다. 이런 진심어린, 하지만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살짝 푸쉬해주는 위로+격려를 들을때마다 울 교수님과 박사과정을 하기로 한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학교에서는 능력에 비해 과분하게도 대학원생 과대표로 뽑혀서 이것저것 추진해보기도 하고, BC주 한인 대학원생 모임에도 감사하게도 초대받아서 여러 능력자분들과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이 모임에서는 서로 나이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서로 ~님 혹은 (그렇지 않을수도 있음에도) 형님이라 부르며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fully-loaded nerdy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놀다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있더라. 다들 전공과 연구분야는 다르지만 본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확고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것은 모두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조명탓인지 눈빛들이 아주그냥 초롱초롱 하더랬다. 이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social 시간을 갖는 것 또한 상당한 위로가 되고있다.
봄이오면 조금씩 나아질 것만 같은 그런 요즘이다.
* 캐나다 대학원 관련 질문은 bc.ca.qna@gmail.com 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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