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결정을 내리고 캐나다에서 공부를 시작한지도 이제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원래는 블로그에 강화학습관련 글을 이것저것 올릴 예정이었으나, 인턴쉽과 졸업논문 작업을 동시에 하게 되면서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아 거의 방치중이다. 몇 안되는 구독 이웃들에게 매우 죄송한 마음이다.
잠시 짬이 난 관계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적어보려 한다.
석사논문 defence는 8월 중순쯤 있을 예정이다. 작년 중순만 해도 졸업논문 주제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는데... 역시 할려면 다 하게 되어있나보다.
아! 중요한 뉴스가 있다. 석사를 졸업하면 SFU에서 박사과정도 밟을 예정이다. 박사를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엄청 고민했는데, 결국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위해 박사를 하기로 했다.
리서치를 해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뭔가 끊임없이 배우는게 좋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제일 불만스러웠던 부분 중 하나가 '배울게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공부를 할려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업무 자체가 관심이 가지 않는 분야였기 때문에 공부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학습하고 나름대로의 방법론을 개발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뿌듯하다. 그리고 계속 공부를 하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 굳어버린줄 알았던 뇌에 기름칠이 많이 된 느낌이다. 회사를 다닐땐 뭘 들어도 뒤돌면 까먹곤 했는데 이제는 훨씬 나아진 듯 하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는 하다. 박사과정은 석사과정과 차원이 다르게 공부할것도 많고, 작성해야하는 논문도 많고 아주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또 하다보면 다 되지않겠는가? 적어도 시도도 안해보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 보다는 훨씬 보람찬 일일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박사과정은 지금 석사과정을 지도해주고 계시는 교수님과 함께 할 예정이다. UBC에도 원서를 넣어볼까 했지만, 다음의 이유들로 SFU에 남기로 하였다.
일단, 교수님이 좋다. 우리 교수님은 교수가 된지 얼마 안되어 매우 젊은데, 내가 그분의 무려 첫번째 석사학생이다. 나이를 물어보진 않았지만 포닥까지 마쳤다고 해도 30대 중후반일테니 나랑 나이차이도 그닥 나지 않는다. 성격이 매우 점잖고 긍정적이고 쿨해서 좋다. 우리나라 대학원처럼 교수가 학생을 종처럼 부리는 일은 단 1도 없고, 오히려 본인이 이것저것 해줄려고 한다. 이 부분이 SFU에서 박사를 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두번째로, UBC에서의 박사생활에 자신이 없다. SFU의 대학원 학풍은 매우 화기애애한 편이다. 학생들끼리 경쟁같은건 거의 없고,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나아가는 문화이다. 그에 반해 UBC 대학원은 (그저 들은 얘기일 뿐이지만) 좀 더 경쟁적이라고 한다. 좀 더 젊은시절의 나였다면 학부때처럼 경쟁을 즐기며 피똥싸며 공부했겠지만 이제는... 그러기엔 체력적으로나 공부머리로나 너무나 힘들다. 안그래도 힘들 박사생활을 그나마 마음편하게 하고픈 생각이 컸다.
세번째로, 입학지원 프로세스로 힘빼고 싶지 않았다. 난 아직 international student이고 여기서 아직 졸업을 안했기때문에 IELTS를 새로 봐야하고, 추천서도 다시 받아야하고, 연구계획서도 정성스레 써야하고 등등... 너무나 신경써야할게 많아서 그냥 지원을 안하기로 했다. 지원시기엔 이미 내 논문주제가 정해서져 막 작업을 하고있을 때였어서 매우 바쁘기도 했기 때문에 될지 안될지 모를 일에 괜한 힘빼고 싶지 않았다.
뭐 사족을 좀 달자면 응용통계학 부분은 SFU가 UBC보다 더 낫다는 (SFU 교수 및 학생들의) 평가가 있기도 하고, BC주에선 UBC나 SFU나 거의 거기서 거기로 보기 때문에 '반드시 UBC에 가겠다'는 생각이 없기도 했다.
이제 내 삶으로 넘어와서, 내가 한국을 떠나면서 가진 신념인 '후회하지 않는 삶', '행복한 삶'을 잘 실천하며 살고있다. 코로나로 인해 어디 막 놀러가고 그러기는 쉽지 않지만,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맞추면서 지내고 있다.
아침부터 낮까지는 인턴 일을 한다. 이것때문에 졸업이 한학기 늦춰지긴 했지만, 일을 하다보니 인턴 일을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일인데 정말 많은것들을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 일할땐 업무분장이 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현재 누가 어떤 업무를 맡고있는지, 일의 진척도는 어느정도인지 불분명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선 애자일 스크럼 프로세스를 채택해서 꽤나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또한, 그냥 기본적인것만 알고있던 SQL이나 PowerBI 등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되고있다. 무엇보다도 캐나다의 사내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서 참 좋은 기회인 것 같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했던 퇴근시간인) 오후 4시쯤 퇴근을 하면 가볍게 홈트레이닝을 하고 동네 산책을 나선다. 학교가 산 위에 있는 덕분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3~40여분 정도를 걷는다.
가끔씩은 학교 트랙에서 조깅도 하면서 건강을 챙기려 발버둥친다.
주말엔 여자친구랑 여기저기 구경가서 놀기도 하고, 푹 쉬기도 한다. 돌아다니다보니 밴쿠버에도 볼거리가 정말 많더라. 코로나라 take away밖에 안되어서 맛집투어는 제한적이지만, 그냥 바람쐬러 돌아다니는것만 해도 충분히 즐겁다. 집에서 쉴때는 근처 산책도 하고, 미드도 본다. 캐나다는 아마존 프라임이나 애플티비 플러스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다 잘 되서 너무 좋다. 요즘엔 애플티비 플러스에서 Mythic Quest라는 드라마를 챙겨보고 있다.
서울에서 살 땐 내가 이러한 생활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살거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만약 2018년 가을의 내가 캐나다행을 단념했다면 난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마 따박따박 나오는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의 노예로 살아가며 매일 아침 미세먼지를 마셔가며 버스에 몸을 맡기고, 회사에선 보람없는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퇴근 눈치만 보고, 밤늦게 퇴근해서는 지쳐서 미드+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땐 아무런 생각없이 살던 삶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너무나도 끔찍하다. 내가 받는 장학금은 한국에서 벌던 소득에 비하면 거의 1/3토막이다 (인턴쉽으로 쪼금 더 벌긴 했다). 하지만 그 기회비용을 지금처럼 만족하는 삶을 살기 위한 대가로 생각하면 결코 큰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까지 생각하면 충분히 지불하고도 남을만한 비용이기도 하다.
가끔은 한국에서 결혼해서 정착해서 잘 살고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이미 자녀가 훌쩍 커서 막 뛰어다니는 친구들도 있다. 그 친구들도 나처럼 인생의 갈림길에서 본인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겠지.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그렇게 남들처럼 살았다면, 한치앞도 모를 정도로 다이나믹한 지금보다는 적어도 예측가능하고 남들만큼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결혼안한) 친구들이 가끔 푸념한다. 자기도 이것저것 배우고 싶고, 자기계발해서 이직도 하고싶고, 코딩도 배우고 싶고, 너처럼 해외에서 살고 싶고 등등... 그래서 어떤걸 하고있냐고 하면 답은 모두 같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이해는 간다. 퇴근하면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지. 하지만 조금은 한심하다는 생각을 안할순 없다. 결국 공상만 하고 있다는 거니까. 이직을 하고싶으면 이력서라도 정리해두던지, 코딩을 배우고 싶으면 학원이나 인강 등록이라도 하던지, 대학원 학위를 받고싶으면 사이버대나 어디 야간대학원이라도 등록하던지, 이민을 가고프면 이민 프로세스를 알아보던지 등등 일단 행동을 해야한다. 소위말해 '질러'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조금 하다 아니다 싶어 포기를 하던 꾸준히 해서 성공을 하던 결판이 날 것이다. 이런것도 안한다면 '로또엔 당첨되고 싶은데 로또는 안샀어'랑 뭐가 다른가 싶다.
이런 고민하는 친구들한테 처음에는 그냥 공감만 하고 넘어갔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같은 고민을 하길래 내 생각들을 나름 진지하게 말해줬더니 '진지충', '꼰대' 등등이라며 뭐라 하더라. 언제부터인가 진지하게 의견을 피력하면 '진지충', 요즘 트렌드에 반하는 생각을 얘기하면 '꼰대'라고 너무나도 쉽게 칭해버린다. 최근에도 꽤 친한 지인이 요즘 핫한 암호화폐를 투자자산으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길래 '꿈과 희망만 있고 기초자산도 없는 투기성 상품'이라고 내 생각을 말했다가 '우리 아빠같이 꽉막힌 놈', '조선시대 사람이냐' 등등 소리를 들었다. 그럴거면 그냥 사지 왜 나한테 물어보는거지...난 전문가도 아닌데...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 난 나름 내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준건데 반응이 저러면 섭섭하긴 하다. 그래서 요즘엔 누군가 자기계발 하고 싶다느니 이직하고 싶다느니 이민가고 싶다느니 공상을 하거나, 암호화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어 그래 화이팅', '난 잘 모르겠다' 하면서 넘겨버린다. 하지만 진지하게 구체적인 방법을 상담하거나 하는 사람에겐 더 정성을 들여 내가 아는 걸 설명해주려고 한다.
먼 훗날에 내가 여기 끄적여놓은 것들을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때의 내 생각이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는것도 재밌을 것 같다. 그때도 '후회없는 삶',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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