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C가 DC했다.
나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좋아한다.
별 생각없기 가볍게 즐기기도 좋고, 화려한 액션에 간간히 터지는 개그까지.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현실은 잠시 잊고 그 순간에 빠져들게 된다.
난 액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액션이 훌륭하다면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장면 안에 담긴 메세지, 배우의 연기 등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그런 탓인지 나는 내가 보는 영화들을 대체로 후하게 평가하는 편이다.
그러던 나에게 영화 '샤잠!'이 나타났다.
-------------------------------------------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
#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소년 '빌리'가 우연히 마법의 힘을 얻게 되어 악당을 물리치며 그 과정에서 가족의 사랑을 느끼며 성장한다는 이야기.
난 히어로 영화를 보기전에 원작에 대한 내용을 좀 찾아보는 편이다.
코믹스를 보진 않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 그 캐릭터의 컨셉, 강점은 뭐고 약점은 뭐고 등등...
일단 '샤잠(SHAZAM)'의 뜻은
S = Solomon(솔로몬)의 지혜
H = Hercules(헤라클레스)의 힘
A = Atlas(아틀라스)의 지구력
Z = Zeus(제우스)의 권위
A = Achilles(아킬레스)의 용기
M = Mercury(머큐리=헤르메스)의 속도
이라 한다.
10대 소년인 빌리가 '샤잠!'이라고 외치면 번개가 그를 강타하면서 변신이 이루어진다.
변신한 샤잠의 몸은 성인이나, 정신은 청소년이기 때문에 몸과 정신의 미스매치로 인한 헤프닝이 많은 편이다.
주변 인물들도 10대 청소년이 많기 때문에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은 편.
상당히 독특한 설정의 히어로이고, 밝고 개그스러운 분위기의 히어로가 기대되어 한걸음에 보러 갔다.
결과는 진짜 대.실.망 이었다.
내가 본 히어로 영화중에 가장 지루하고, 정말 단 한번도 피식 한적도 없는,
보는 내내 그냥 결론 빨리 나고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영화였다.
심지어 아직도 DC의 흑역사 끝판왕으로 불리는 '그린랜턴'과 비슷하다고 감히 평하고 싶다.
쿠키영상이 두개나 있다던데 그마저도 하나도 안궁금해서 그냥 안보고 나와버렸다.
내가 느낀점은 다음과 같다.
#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토리
- 처음부터 가관이다.
영화는 악역 '테디'의 과거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항상 무시받으면서 자라던 '테디'는 아버지의 차 안에서 우연히 마법의 세계의 신전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한 마법사가 다가와서는 자기는 자신의 후계를 찾고있으며, 오직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힘을 가질 자격이 된다고 한다.
마법사는 그곳에서 7가지 죄악(식탐, 탐욕, 나태, 색욕, 교만, 분노, 질투)을 봉인하고 있으나, 노쇠하여 점점 힘을 잃고있어 후계자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마법사에게 봉인되어 있던 7가지 죄악이 테디에게 속삭인다.
신전에 위치한 빛나는 구체를 만지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고 하며 유혹한다.
마법사가 보는 앞에서 그 구체에 다가가던 테디는, 그 구체에 손을 대려는 순간 마법사의 제지를 당한다.
마법사는 '순수한 아이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넌 자격이 없어!'라며 불같이 화를 내며 테디를 내쫓는다.
그렇게 쫓겨난 테디는 '난 자격이 된다구!'라며 그 마법의 신전을 찾아 힘을 얻고자 애쓴다.
여기서부터 좀 어이없는게,
일단 그 마법사가 겁나 어이없다.
애초에 지가 자격이 될만한 아이로 판단해서 불러와놓고,
대놓고 신전 가운데 떡하니 위치한, 다른 설명도 없이 '힘을 주겠다'고 속삭이는 예쁘게 생긴 구체를 만지려 했다는 이유로 겁나 화내면서 다시 내쫓는다.
참고로 그 구체는 전혀 사악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그냥 보라색의 빛나는, 게다가 선한 힘인지 악한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힘을 주겠다고 속삭이는 구체다.
오죽하면 이 장면을 보면서 '아 쟤는 원래 악당의 기운이 있는 애였구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웬 미친 노인네가 뜬금없이 불쌍한 애 한명 데려와서 괴롭힌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럴거면 처음부터 '그 구체는 매우 사악한 거니까 만지면 안된다'라는 설명이라도 하던가...
이래놓고 나중에 빌리가 찾아왔을때(그땐 이미 신전에 컴백한 테디가 구체를 흡수하고 도망간 상태)는
당황해 하고있는 아이에게 지 이름을 외치라고 다그치며(그마저도 '빌리'가 나중에 물어봐야 알려준다) 힘을 받을 것을 강제한다.
게다가 '빌리'에게는 그런 테스트도 전혀 없었다.
만약 그 구체가 신전에 있을때 빌리가 찾아왔다면, 빌리는 과연 그 구체를 만지려고 안했을까?
'샤잠'의 S가 솔로몬의 지혜라며... 아무리 봐도 Stupid의 S 같은데....
- 너무 약한 악역
7대 죄악은 과거에 한 문명을 멸망시켰을 정도로 강한 녀석들이라는데, 이 영화에서는 정말 한없이 약하게 나온다.
한 문명은 커녕 동네 중소규모 놀이공원조차 망가트리지 못한다.
각각의 죄악에 대한 개성도 전혀 없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등등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저 '테디'에게 힘을 공급해주는 힘셔틀 정도의 역할이다.
샤잠에 의하면 '테디'를 이용하려고 한다는데, '테디'를 이용해 뭘 하려는건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명색에 7대 죄악이라는 것들이 힘을 얻은지 5분도 채 안되는 신참 히어로들(샤잠 패밀리)의 되도않는 액션에 속수무책 당하기만 한다.
그마저도 '테디'의 눈에 박힌 구슬을 뽑으니 저절로 그 안으로 들어가서 봉인되어 버린다.
7대 죄악이 아닌 그냥 못생긴 괴생명체들이라고 해도 스토리에 전혀 영향이 없다.
# 전혀 공감 안되는 캐릭터
- 주인공부터 공감이 안된다.
빌리는 어렸을때 놀이공원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위탁가정을 전전한다.
하지만 엄마를 그리는 마음에 정착하지 못하고 번번히 가출을 감행하고,
그로인해 위탁가정에서 쫓겨나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마음을 쉽게 열지 않으며, 가족이라는 개념을 그저 '나약한 사람들이 기댈 곳을 찾기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지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딱 전형적인 '불우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주인공' 이미지가 그려진다.
실제로 아역 '빌리'는 같은 위탁가정 멤버인 프레디, 다라 등 다른 고아들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등 어느정도 어두운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샤잠!'이라고 외치는 순간 모든게 뒤집힌다.
너무나 밝고, 쾌활하고, 허당에 고민이라곤 1도 없어보이는 캐릭터로 변해버린다.
불과 몇시간 전만 해도 마음을 열지 않던 프레디에게 갑자기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베프가 되고,
매사에 가볍게 행동하고, 호들갑스러우며, 관종끼까지 보인다.
나름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가진 히어로를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변신 전과 후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보니
얘가 단순히 변신을 한건지, 아니면 마법세계의 다른인물로 대체가 된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리고 SHAZAM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런 부분들을 전혀 살리지 못한다.
S는 분명 솔로몬의 지혜인데 지혜롭게 뭔가를 하는 부분이 전혀 안나오고, 오히려 바보스러운 장면이 더 많다.
아킬레스의 용기 같은것도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악당으로부터 열심히 도망다닌다.
그나마 힘, 번개쏘기, 속도 정도만 나오지만 그마저도 임팩트없게 묘사된다.
- 매력없는 악역
'테디'라는 캐릭터도 너무 단순하기 그지없다.
요즘 대세가 '선악의 구분이 모호한, 나름의 가치관과 사명이 있는' 매력적인 악역인데 '테디'는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에 그가 악하게 변하게 된 계기가 나오는데,
그가 겪은 트라우마라곤
'어려서부터 날 무시하던 아버지와 형' + '구슬 좀 만지려 했다고 화내면서 힘 안준 마법사'
이게 다다. 이 트라우마 때문에 7가지 죄악의 힘+샤잠의 힘을 차지하고 싶어하는게 그의 목표의 전부다.
그런 막강한 힘을 가지고 뭔가를 해야겠다 같은건 전혀 없다.
'원하는 모든걸 이룰 수 있는 힘'을 그정도로 갖고싶어 한다면,
그런 힘을 갈구하게 될 정도로 그토록 원하는게 무엇인지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거 아닌가.
- 밋밋한 주변인물들
주인공 '빌리'의 주변인물들로 나오는 위탁가족들도 하나같이 매력이 없다.
각자의 개성도 뚜렷하지 않고, 역할도 미미하다.
그 중 정말 단 한명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모두 출연하지 않았어도 영화 전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 같을 정도다.
그냥 막판에 샤잠 패밀리를 등장시키기 위해 억지로 우겨넣은 듯한 느낌이다.
# 레알 폭망한 개그
나는 그래도 예전에 외국에서 좀 살았기도 하고, 미드도 즐겨봐서 서양의 유머에 어느정도 익숙한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이해 못하는 외국의 팝컬쳐 레퍼런스 같은것도 곧잘 알아듣는 편이다.
그래서 웬만한 서양식 개그에는 '피식'정도는 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나였는데,
샤잠의 개그는 정말 너무 재미가 없다.
어른 샤잠을 연기한 배우의 본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내내 미국 코미디 배우의 톤을 구사하며 몸개그+드립개그를 열심히 구사하는데, 정말 단 한번도 웃긴 적이 없다.
분명 웃기라고 넣은 장면인 것 같은데 하나도 안웃기고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지기만 했다.
어른의 몸을 가진 아이 컨셉의 슈퍼히어로로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다면,
그냥 딱봐도 가볍고 하루종일 되도않는 개그치게 생긴 외모의 배우가 아닌, 근엄하고 무뚝뚝해보이는 배우를 기용했어야 했다.
우리가 마동석의 우락부락하고 무서울 것 같은 겉모습과 대조를 이루는 그의 귀여운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뭐 어차피 대사 자체도 하나같이 핵노잼 드립들이긴 했지만...
주인공 뿐만 아니라 주변인물들이 간간히 치는 개그 중에도 웃긴 구석이 정말 하나도 없다.
# 정말 볼 것 없는 액션
히어로 영화에서 액션은 거의 생명과 같다.
액션이 화려하다면 스토리의 개연성이 좀 없어도 충분히 용서받는게 히어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액션은 진짜 기대할 부분이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DC 세계관에서도 상당히 강하다고 평가받는 샤잠과, 그 힘에 필적하는 악당 간의 대결이라고 하면
빵빵 터지고 화려하고 타격감과 박진감이 넘쳐흐르는 액션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액션은 타격감과 박진감이 전무하며, 펑펑 터지기는 커녕 너무나 고요하다.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지루하고 밋밋한 액션씬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나중에 떼거지로 나오는 샤잠 패밀리들도 왜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액션도 정말 터무니없이 빈약하다.
# 긴장감 제로
영화 중후반부에 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게 사실은 엄마가 일부러 버린거였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이미 초반에 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는 장면에서 다들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런걸 뭔가 대단한 반전인 것처럼 영화 중후반부에 넣었다.
오히려 '사실은 엄마가 애타게 찾으러 다니다가 사고를 당해서 이별하게 됐다'라고 하는게 더 반전이었을 것 같다.
'테디'가 '빌리'의 의남매들을 붙잡고 힘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장면에서도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들이 연기를 못한건지 연출이 잘 안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무슨 장난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쓰다보니 엄청 장황해졌지만, 결론은 이거다.
DC가 예전의 노답 DC로 돌아갔다.
아쿠아맨을 보고 '와 DC도 이제 좀 볼만하네'라고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DC는 원더우먼이랑 아쿠아맨만 믿고 가야겠다.
평점: 1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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